라스베가스 스트립의 새 주인
(Feat.Hard Rock Hotel & Casino)
스트립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물
요즘 라스베가스 스트립을 걸으면 하나 눈에 딱 들어오는 게 있다. 기타 모양으로 생긴, 42층짜리 초고층 건물이다. 원래 이 자리엔 미라지(The Mirage)라는 유명한 카지노가 있었다.
근데 이 새 건물 주인이 특이하다. 카지노 회사가 아니라, 미국 원주민(인디언) 부족이다. 이름은 세미놀(Seminole) 부족. 플로리다에 사는 부족인데, 지금 라스베가스에다 우리 돈으로 약 5조 원 넘게 들여서 이 기타 건물을 짓고 있다.
"인디언 부족이 무슨 돈이 있어서?" 싶을 텐데, 이게 사실 꽤 재밌는 얘기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전설
먼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미라지 얘기부터. 1989년에 스티브 윈이라는 카지노 사업가가 이 건물을 지었다. 당시 건축비가 지금 돈으로 환산해도 어마어마했던 6억 3,000만 달러였다. "카지노 하나 짓는데 이렇게 돈을 쓰다니, 저러다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근데 안 망했다. 오히려 대박이 났다. 로비에 열대 정글을 꾸며놓고, 밤마다 가짜 화산이 폭발하고, 돌고래도 키우고, 마술쇼도 했다. 사람들이 "그냥 도박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구경하러 가는 곳"으로 카지노를 보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지금 우리가 아는 벨라지오, 베네시안 같은 화려한 카지노들도 다 미라지를 따라 만들어진 후배들이다
그렇게 35년을 버티다가, 2024년에 미라지가 문을 닫았다. 화산도, 돌고래도, 마술쇼 무대도 며칠 만에 다 철거됐다
이 자리를 산 인디언
이 자리를 산 게 세미놀 부족이다. 2022년에 10억 달러 넘게 주고 이 부지를 샀고, 지금 그 위에 5조 원 가까이 들여서 기타 모양의 새 건물을 짓고 있다. 2027년 하반기에 문을 열 예정이다.
그럼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서 — 인디언 부족이 어떻게 이런 큰돈을 굴릴까.
세미놀 부족은 별명이 "정복 안 된 부족"이다. 옛날에 미국 정부랑 전쟁했을 때, 끝까지 항복 안 하고 평화조약도 안 맺은 유일한 부족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그 성격이 사업할 때도 그대로 나온다.
미국엔 재밌는 법이 하나 있다. 인디언 부족 보호구역 안에서는, 그 주(state)에서 도박이 불법이어도 부족이 카지노를 운영할 수 있다. 부족 땅은 연방법을 따르지, 주법을 안 따르기 때문이다. 세미놀 부족은 이 틈을 제일 먼저 알아채고, 1979년에 미국 최초로 고액 배팅 빙고홀을 열었다. 이게 지금 미국 전역 인디언 카지노 산업 전체의 시작점이다.
카페 체인은 왜 샀을까
그 작은 빙고홀이 지금은 플로리다에 있는 초대형 카지노 두 곳으로 커졌다. 미국에서 제일 돈 잘 버는 카지노 5곳 안에 들어가는 곳들이다. 이 카지노들이 버는 돈이 부족 전체 살림의 90% 이상을 책임진다.
그리고 2007년, 세미놀 부족은 이 카지노 돈으로 전혀 다른 걸 샀다. "하드록(Hard Rock)"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통째로. 우리가 아는 그 기타 모양 로고, 밴드 기념품 파는 카페 체인 말이다. 값은 우리 돈으로 1조 원 넘게 냈고, 사모펀드 같은 큰손 경쟁자 72곳을 다 제쳤다. 인디언 부족이 세계적인 브랜드 기업을 통째로 산 건 이게 처음이었다.
살 때만 해도 하드록은 그냥 카페 체인이었다. 근데 부족이 20년 가까이 키워서, 지금은 전 세계 80개국에서 호텔·카지노·카페 300곳 넘게 운영하는 큰 회사가 됐다.
왜 카지노만 하지 않고 굳이 카페 브랜드까지 샀을까. 이유는 리스크 분산이다.
카지노는 주정부랑 맺은 계약이 있어야 운영할 수 있는데, 이 계약이 정치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2015년엔 세미놀 부족이 이 계약 문제로 플로리다주랑 법정싸움까지 갔다.
"카지노 하나에만 모든 돈을 걸면 위험하니, 다른 사업으로도 돈을 벌어두자"는 게 부족의 전략이었다. 라스베가스에 새 건물을 짓는 것도 이 큰 그림의 일부다.
1989년엔 카지노 사업가 한 명의 무모한 배팅이 라스베가스를 바꿨다. 35년 뒤인 지금은, 옛날에 미국 정부랑 조약도 안 맺었던 인디언 부족이 그 자리에 자기들 배팅을 새로 얹고 있다. 원래 라스베가스는 이렇게 예상 못 한 사람들이 큰 도박을 걸면서 만들어진 도시였다.
나도 이 도시에서 13년째 살고 있는데, 매번 다음엔 또 뭐가 나올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