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와 네온사인 이야기

(feat. 고물상에서 부활한 것들)


지난 7월 4일 독립기념일, 필라델피아 기온이 화씨 102도였다. 체감 112도. 그 땡볕에 사람들이 선로 옆에 진을 치고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 '빅보이 4014'라는 증기기관차가 지나가는 걸 보려고.

올해가 미국 건국 250주년이라 유니온 퍼시픽 철도회사가 이 기관차를 사상 처음으로 서부에서 동부까지 보내고 있다.

1941년 제작, 무게 약 500톤, 길이 40미터. 현재 운행 중인 증기기관차 중 세계에서 가장 크다. 10개 주, 50군데 넘는 정차역마다 인파가 몰린다.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 이 기관차는 원래 '효율'에서 완패해 버려진 물건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디젤 기관차가 등장하자 증기기관차는 순식간에 밀려났다.

석탄과 물을 계속 채워야 하고, 정비 인력은 몇 배로 들고, 열효율은 상대가 안 됐다.

빅보이 25대 중 17대가 고철로 해체됐다. 살아남은 8대는 박물관 마당에 수십 년을 서 있었고, 4014도 그중 하나였다.

 

그 고철 후보를 철도회사가 다시 꺼내 복원해서 2019년에 재가동시켰다. 그리고 지금, 화물 한 칸 안 끄는 이 비효율 덩어리가 회사의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홍보 자산이 되어 미국을 돌고 있다.

 

여기까지 읽고 "그래서 이게 라스베가스랑 무슨 상관인데?" 싶을 텐데, 지금부터가 우리 동네 이야기다.

라스베가스에 네온사인이 처음 켜진 건 1929년, 프리몬트 스트리트의 오아시스 카페였다. 이후 반세기 동안 네온은 라스베가스 그 자체였다.

스타더스트, 플라밍고 — 전설적인 간판들이 도시의 밤을 채웠다.

근데 네온에도 '디젤'이 나타났다. LED다.

제작이 쉽고, 전기를 덜 먹고, 유리관처럼 깨지지도 않는다. 카지노들이 간판을 LED 전광판으로 갈아치우면서 네온사인은 효율에서 완패했다.

철거된 간판들은 간판 회사 야적장에 쌓였다. 이런 곳을 영어로 boneyard, 직역하면 '뼈 무덤'이라 부른다. 증기기관차들이 해체를 기다리던 곳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 고철 야적장에 구경시켜 달라는 요청이 매주 수십 건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화 '화성침공'과 '베가스 베케이션'이 여기서 촬영되며 입소문이 났고, 간판 회사가 본업이 바빠 투어를 다 거절하자 결국 1996년 시의회가 박물관 설립을 의결했다. 네온 뮤지엄의 시작이다.

이후 숫자가 재미있게 움직인다.

2021년엔 미국 박물관 연맹 인증까지 받았다. 스미소니언과 같은 등급의 공인을 고철 야적장이 받은 것이다. 지금은 소장 간판 약 700개 중 자리가 없어 35%만 전시 중이고, 약 4,500만 달러 규모의 확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처음 발표됐던 아츠 디스트릭트 안은 무산됐고, 현재는 다운타운 후보지 세 곳을 검토 중이다.

 

두 이야기의 구조가 똑같다.

효율에 밀려 퇴출 → 뼈 무덤에 방치 → 수십 년 후 '흔했던 것'이 '희귀한 것'으로 → 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내고 줄을 선다.

증기기관차가 매일 다니던 시절엔 아무도 선로 옆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네온이 도시 전체를 덮었던 시절엔 아무도 간판을 보러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가치는 물건이 아니라 희소성에 붙는다는 걸, 고철들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하는 사람으로서 한 줄만 얹으면 —
라스베가스에서 미드센추리 주택이나 프리몬트 구도심이 재평가받는 흐름도 결이 같다. 도시가 젊을 때는 '낡은 것'이 없다. 도시가 나이를 먹어야 '역사'라는 자산이 생긴다.

라스베가스는 지금 그 문턱을 넘는 중이라고 본다.

그나저나 네온 뮤지엄,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인데 4년 넘게 살면서 아직 못 가봤다. 매일 지나치는 건 언제나 나중으로 밀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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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서 땅이 모자란 도시